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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제국이 재정 부족에 시달리며 패권을 유지할 수 없었던 이유
    카테고리 없음 2021. 12. 24. 21:50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귀금속을 얻는 데 성공한

    스페인 제국, 과연 그만큼 부강해졌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입니다.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한 은 가운데

    국왕 몫으로 떼어놓는 킨토 레알은

    대개 스페인 황제가 제국 변경 곳곳에서

    치르고 있던 전쟁에 투입되거나

    아니면 황제의 빚을 갚는데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남는 게 없었던 셈이지요.

    오늘은 바로 이 문제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진출처 한국경제

     

    모든 문제의 근원은 스페인 제국이

    중앙 집중적인 재정 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너무 많은 전쟁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영토를 넓혀 나가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이사벨과 페르난도 시대의 통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그랬듯

    제국에 속한 여러 지역 각각의

    제도와 관행을 그대로 두었으므로

    통합적인 재정 체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아무리 황제라도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

    특히 엘리트와

    끊임없이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과

    연관된 일입니다.

    스페인 본토에 한정해서 본다면

    엘리트가 모이는 대의기관,

    그러니까 코르테스가

    꽤 큰 힘을 휘두르는 곳에서는

    황제도 마음대로 세금을 매기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엘리트의 힘이 약하고

    상대적으로 황제 권력이 막강한

    카스티야 같은 곳에 수탈이

    집중되었지요.

     

    다른 하나는 국왕이 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와

    연관된 일입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인 황제와 별개로 존재하는

    국가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황제와 제국은 마치 한 몸처럼,

    제국에 속하는 각 지역은

    황제의 개인 재산처럼 취급했던 것이지요.

    그랬기 때문에 카를 5세는

    제국의 어떤 한 지역에서 거둔 재정 수입을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지역 엘리트는 저항하기 마련이었습니다.

    나중에 네덜란드가

    반란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스티야처럼

    지역 엘리트의 힘이 약한 곳에서는

    황제가 그곳에서 세금을 거둬들여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 쓰는 데

    문제가 없었지요.

     

    실제로 카를 5세는 여러 전쟁을 치르느라

    돈이 부족해지니까 카스티야에서

    온갖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황제가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크게 정규 세금과 특별 세금,

    부담금으로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은이 있었지요.

    특히 중요한 세금은

    정규 세금인 매매세였는데,

    전체 재정 수입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특별 세금과 부담금이

    20퍼센트 정도 되었습니다.

    이런 여러 수입원에서

    국왕이 가져가는 재정수입은

    1522년에서 1560년 사이에

    무려 4배가 늘었습니다.

    카스티야는 전형적인 농업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세금을 이렇게 많이 거둬들였으니

    백성의 형편이 크게 나빠졌습니다.

    어업과 조선업, 상업이 발전했던

    네덜란드보다도

    카스티야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이

    세 배가 넘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렇게 세금을 거둬들였는데도

    카를 5세는 전쟁 비용을 다 충당할 수 없어서

    국제 은행가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대부분 외국인 은행가들이었지요.

    담보는 카스티야에서 나오는 세금이었습니다.

    카를 5세는 1521년부터 1555년 사이에

    그걸 담보로 2,800만 두카트를 빌렸는데,

    그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은

    독일과 제노바 은행가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스페인 은행가들에게는

    이런 큰돈을 빌려줄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시대에

    유대인 은행가들에게 기독교 개종을 강요해서

    이들이 스페인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그 무렵에 카스티야에서 거두는 재정수입이

    연평균으로 대략 220만 두카트 정도였으니까

    연평균 재정 수입의 10배가 넘는

    엄청난 금액을 빌려왔던 것입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돈으로 따지면 대략 2억 8000만 달러 정도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큰 빚에 허덕이게 된 카를 5세는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돈을 갚을 수가 없어서

    후계자 펠리페 2세에게

    이 문제를 고스란히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펠리페 2세 시대 스페인 제국의 재정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펠리페 2세 시대에는

    네덜란드의 반란과 잉글랜드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전쟁을 또 치러야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이런 전쟁에 들어갔는지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1571년부터 1575년 사이에

    플랑드르 지역에서 쏟아 부은 전쟁 비용이

    900만 두카트였는데,

    이 돈은 같은 시기에

    아메리카에서 들어왔던 귀금속의 총액

    400만 두카트의 두 배를

    훨씬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렇게 재정 지출이 늘어나니까

    펠리페 2세는 세율을 인상하고

    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귀금속 수입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도 빚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

    그러니까 지불 정지를

    일방적으로 선언해버렸습니다.

    42년간 제위에 머무르면서

    펠리페 2세는 모두 네 번에 걸쳐서

    지불 정리를 선언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스페인 제국은

    전쟁을 계속해서 치러야 했지요.

     

    이렇게 스페인 제국은 겉보기에는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국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재정 체제를 갖추지 못해

    안으로는 곪아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메리카에서 들어왔던 엄청난 양의 귀금속도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스페인 제국은

    점점 쇠퇴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자본주의 이전에 패권 국가가

    안고 있던 근본적인 한계는

    재정 동원 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재정의 밑바탕이 되는 경제가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더 많이 창출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스페인 제국은 농업사회라서

    그런 경제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재정 부족에 시달리면서

    패권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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