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이 성공할 수 있던 이유
    카테고리 없음 2021. 12. 22. 10:37

    2020년 2월, 자카르타 중심부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는

    '닛케이 포럼 자카르타 2020'이 진행됐습니다.

    인도네시아 독립 75주년을 맞은

    2020년을 기념해 개최한 포럼에서는

    오너가 3세 기업인 발표자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현지 최대 부동산 회사 리뽀 까라와찌의

    존 리아디 최고경영자였는데요.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손꼽히는 재벌기업인

    리뽀 그룹 창업자의 손자입니다.

    이어 소개 된 액스턴 살림

    살림그룹 전무이사 역시

    관심을 모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던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화인 재벌 가문의 3세 경영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화인(華人)은 보통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계 주민 중

    해당국 국적 보유자를 지칭하는데요.

    인도네시아 내 화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3%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실세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죠.

    오늘은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이 성공할 수 있던 이유를 알아봅니다.

     

    사진출처 아시아타임즈

     

    대만 행정원 산하 교무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동남아에는

    대략 3,000만 명 화인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전 세계 화인 인구 4,300여 만 명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수치입니다.

    인도네시아 840만 명, 태국 700만 명 등

    아시아 화인 인구의 90% 이상이

    동남아에 집중돼 있습니다.

    태국처럼 화인들이 토착 사회에

    비교적 원만하게 동화돼 온 국가가 있는가 하면,

    말레이시아 등에 거주하는 화인들은

    고유의 정체성을 상당 부분

    고수해 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광동성, 복건성 등 동남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 남부 지방 출신들은

    중국해를 건너 동남아에 정착해

    화인의 대다수를 이루게 되었죠.

     

    화인이 처음 인도네시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879년,

    당나라 시절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명나라 때인데요.

    정화의 서태평양과 인도양 대원정이 있었고,

    17세기 중반 명청 교체기를 거치며 본격화 된

    중국인의 동남아시아 이주는

    20세기를 전후해 한층 속도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동남아 국가들의 성장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워갔죠.

    화인들은 강압적 방식의 ‘중국계 동화 정책’ 등을 펼친

    수하트로 대통령 하에서

    정경유착과 부패 등으로 부를 크게 축적했습니다.

    이후 1999년 총선 직후 국민협의회에서 선출 된

    압두라만 와힛 대통령이 2000년 2월

    유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정식 승인하면서

    중국 문화도 허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2004년 인도네시아

    ]최초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중국계 여성 마리 엘까 빵에스뚜를

    무역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중국계를 다소 폄하하는 의미를 지닌

    찌나(Cina)라는 표현을 띠옹꼭(Tiongkok, 중국)으로

    공식 변경하는 등 중국계 유화정책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인도네시아 내에서 큰 부를 축적해 오던 화인들은

    중국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중국 자본력을

    인도네시아로 끌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점령 시절이던 18세기 중반 이래,

    자카르타 북쪽 구시가지 초입에 들어선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대를 이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온

    화인 집단은 이제는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요.

    현재는 유통, 금융, 부동산 분야 등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민간 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살림 그룹, 시나르마스 그룹,

    리뽀 그룹 등은 대표적인 화인 재벌로써

    인도네시아의 경제를 이끌고 있죠.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화인 자본의 성장에는

    유교적 공동체 정신에 기반한 결속력과

    인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예를 들어, 시나르마스 그룹의 창업자

    에까 찝따 위자야는 중국 복건성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나르마스 그룹에서 신도시 부동산 개발을

    추진할 당시 복건성 출신의 화인들이

    뜻을 모아 부동산 개발을 착수시킨 일화도 있죠.

    또 부모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화인 재벌 3세들은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유학하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선진 경영과 기술을 배워온 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전자상거래, 핀테크 등

    디지털 신사업에 뛰어들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인도네시아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 세기에 걸쳐 인도네시아 전역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노하우를 쌓아 온 화인 자본과의 협력을 고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주의해야할 사항도 있습니다.

    화인 자본의 기업들은 가족 운영이 대부분이기에

    지배구조 등이 투명하지 않은 것은 물론

    선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술 및 혁신 수준이 대체로 낮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고요.

    또 계약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시,

    인도네시아의 권력과 결탁한 화인들이

    방해 공작을 펼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