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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신화 <원천강본풀이> 이야기
    카테고리 없음 2021. 12. 21. 23:27

    ‘원천강’을 아십니까?

    한국 민간신화에서 원천강은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

    바다 건너 별세계 높은 담이 둘러진 곳에

    네 개의 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함께 모여 있다고 해요.

    시간의 원천이 되는 곳이지요.

    그곳에서는 인생사 고민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신화 속 원천강은 저승에 속하는 공간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갈 수 없는 곳이지요.

    그런데 한 소녀가 홀로 그곳을 찾아갑니다.

    제주도 신화 <원천강본풀이>가 전하는 사연입니다.

     

    사진출처 KBS

     

    적막한 들에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옆에 아무도 없이 학 한 마리뿐이었지요.

    어느 날 소녀를 발견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자

    소녀가 말합니다.

    “저는 강림들에서 솟아나 혼자 살았습니다.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났으니

    오늘을 생일로 하고 이름을 오늘이라고 하자꾸나.”

    이렇게 소녀는 이름을 얻습니다.

    아득한 우주에 하나의 점과 같았던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순간이지요.

    마을로 온 오늘이는 사람들한테

    부모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자기 부모는 누구이며,

    왜 자기를 버려두고 떠났는지 묻게 되지요.

    그때 백씨부인이

    오늘이 부모가

    원천강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자 오늘이는 곧바로 길을 떠납니다.

    존재의 뿌리를 찾기 위한 여행이었지요.

     

    길을 떠난 오늘이는

    서천강가의 별층당에서

    늘 글만 읽는 장상(長常)이라는 도령을 만납니다.

    그는 원천강 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천강에 가거든

    내가 언제까지 글만 읽어야 하는지 물어봐 주세요.”

    오늘이가 그 다음에 만난 것은

    연화못 연꽃나무였습니다.

    “나는 꽃이 윗가지 하나만 피니

    어쩐 일인지 알아봐 주오.”

    다시 길을 떠난 오늘이는

    바닷가에서 뒹구는 이무기를 만납니다.

    “원천강에 가거든

    내가 여의주를 세 개나 물었는데

    왜 용이 못 되는지 알아봐 주오.”

    이무기 도움으로 청수바다를 건넌 오늘이는

    별층당에서 글을 읽는 처녀

    매일(每日)이를 만납니다.

    “내가 왜 매일 이렇게 글만 읽어야 하는지

    알아봐 주세요.”

    다시 길을 떠난 오늘이는

    우물가에서 울고 있는 선녀들을 만납니다.

    물을 길어야 하늘로 올라가는데

    두레박에 구멍이 나 있었지요.

    오늘이는 풀을 으깨서 구멍을 막아줍니다.

    선녀들은 오늘이를 원천강 앞까지 데려다주지요.

    처음 길을 떠날 때 오늘이에게는

    자기 고민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세상 모든 존재가

    고민을 가지고 있음을 압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지요.

     

    원천강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문이 꽁꽁 닫혀있고 문지기가 막아섰지요.

    그러자 오늘이는 가슴속 설움을

    한바탕 통곡으로 펼쳐냅니다.

    그 절박함이 통했는지

    마침내 문이 열리고 오늘이는

    원천강 선인과 신녀를 만납니다.

    “내 딸아. 우리가 너의 부모로다.

    너를 낳은 날에 하늘의 명으로 여기 왔다만

    항상 네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보호하고 있었단다.”

    그렇게 부모를 상봉한 오늘이는

    원천강 사계절을 구경한 뒤

    여러 고민들에 대한 답을 듣고서

    되돌아옵니다.

    그 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 답에 신화적 의미가 담겨 있지요.

     

    매일 책을 읽는 장상이와

    매일이에 대한 답은

    서로 짝을 이루어 함께 사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만년영화를 누리게 되지요.

    책을 좋아한 두 사람이 동지를 만나

    행복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좀 다르게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매일(每日)’과 ‘장상(長常)’이었어요.

    매일이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얽매였고,

    장상이는 늘 먼 곳만

    바라보았던 것은 아닐까요?

    ‘순간’과 ‘영원’은 서로 만남으로써

    의미를 갖게 되지요.

    그것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오늘’이고요.

    연꽃나무의 답은 윗가지 꽃을 꺾어서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지요.

    연꽃나무는 눈앞의 가치나

    성과를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는 발전이 없고 초라해지지요.

    ‘화락능성실(花落能成實)’이라 했어요.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길이길이 많은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세상을 뜻깊게 사는 방법이지요.

     

    이무기의 답은

    여의주를 한 개만 무는 것이었습니다.

    여의주 두 개를 내려놓은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하지요.

    세 개의 여의주를 문 이무기는

    한꺼번에 세 가지, 말하자면

    권력, 돈, 명예를

    다 가지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몸이 무거울 수밖에요.

    귀중한 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간 여의주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하나의 여의주가

    ‘자기 자신’이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가 여의주(如意珠)가 될 때,

    뜻대로 움직이는 빛나는 존재가 될 때

    참다운 자기실현이 가능한 것 아닐까요?

    그 여의주의 다른 이름은 바로

    신성(神性)일 것입니다.

     

    오늘이는 연꽃과 여의주를 가지고

    원천강 선녀가 됩니다.

    신이 된 것이지요.

    오늘이가 찾은 진정한 해답은

    부모가 해준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멀리 있는 줄 알았지만,

    부모님은 늘 곁에서 자기를 지켜주었지요.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능력,

    다 부모님한테서 온 것이잖아요!

    부모님은 늘 내 안에 계셨던 거예요.

    그런 깨달음을 통해 오늘이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우주적 존재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계절이 함께 모여 있다는 원천강,

    그곳은 아득히 먼 곳에 있을까요?

    창밖의 들녘을 한번 바라보세요.

    사계절 풍상이 서려 있는 곳,

    억겁의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곳,

    우리 사는 이곳이 곧 원천강 아닐까요?

    그곳에 있는 우리 모두가

    영원한 우주적 존재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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